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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교육의 이해(2)

농부미찌 2024. 9. 9. 01:41

 우리가 숲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만일까요?

 19세기 미국에서는 '숲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무슨 의미를 지녀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과 철학에 대한 대립이 치열했습니다. 

 

 John Muir : 훼손되지 않은 숲은 야생이 인간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혜택이 최적 상태에 달한 것을 의미

 존 무어 - 스코틀랜드 태생의 미국인으로 자연주의자, 작가, 자연보호주의자이다. 그는 많은 편지, 수필, 그리고 책을 통해서 자연을 탐험한 이야기를 전해 줬는데, 특별히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했다.(위키백과)

 Gifford Pinchot : 야생의 숲은 인간을 위해 영속적 순생산을 창출하는 이용가능한 자본으로 바라봄. 원시림은 생장과 고사간 균형을 이른 숲이지만, 경영림은 천이의 나중 단계에서 순생산량이 감소하기 전에 주기적으로 벌채해 숲의 목재 생산성이 최대한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든 숲

  기포드 핀초트 - 미국의 산림가이자 정치가(구글)

 

  이러한 사상과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는 자연관을 형성하고, 마지막으로 실천할 것입니다. 이 중 실천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의 자연관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그 마지막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구석기 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소비 에너지는 나무였습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제 49대 헌강대왕 때는 성 안에 초가집은 하나도 없고, 집의 처마와 담이 이웃집과 서로 연해 있었다. 또 노랫소리와 피리 부는 소리가 길거리에 가득차서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라고 하며, 삼국사기에서는 헌강왕이 월상루에 올라 민가를 바라보며 "내가 듣건데 지금 민간에서는 짚이 아닌 기와로 지붕을 덮고, 나무가 아닌 숯으로 밥을 짓는다 하니 과연 그러한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신라왕궁 복원 조감도 (출처 : 경상매일신문)

 

 신라시대 민가의 지붕은 왜 짚이 아닌 기와였을까요? 왜 그들은 숯으로 밥을 지어 먹었을까요? 아마도 화재위험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요? 신라시대는 이렇게 경순왕 시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신라시대 내내 신라인들은 나무를 열심히 베어다 썼을 거에요. 이웃나라인 고구려와 백제와 싸우기 위한 무기를 만들 때에도, 추위를 견딜 때에도, 기와를 만들 때에도, 숯을 만들 때에도 나무가 필요했으니까요. 

 

 경주 배동 삼릉에 가면 소나무가 있는데 전부 묘하게 꼬불꼬불합니다. 왜 경주에 있는 소나무들은 꼬불꼬불할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위적 간섭입니다. 천 년 동안 매일 에너지를 쓴다면 어떤 나무 부터 벴을까요? 똑바로 잘 생긴 나무부터 벴겠죠. 나무도 DNA가 있는데, 똑바로 잘 생긴 나무의 DNA는 도태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DNA 형질이 꼬불한 나무들만 남았을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울진 삼척의 소나무는 곧게 우뚝 서 있습니다. 그 곳은 사람이 갈 수 없는 험한 산이었기 때문이죠. 인위적 간섭이 없는 소나무들은 서로 경쟁을 했을 것입니다. 소나무는 햇빛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수종으로 옆의 나무보다 햇빛을 잘 받기 위해서는 곧게 우뚝 서야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곧게 뻗는 DNA를 가진 나무들이 남아 금강송 숲을 이뤘습니다.

(좌)경주 삼릉의 안강형 소나무 (우) 울진 삼척의 금강송

 

 우리에게 숲이 필요한 이유는 중요한 에너지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민족문화 이해에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근원적인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숲에서 치유받았다고 느끼는 것은 치톤피드 때문일까요? 숲에서 치유받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게 숲에 가서 같이 걸으며 마음의 상처를 터놓고 풀린다는 내용입니다. 도대체 숲이 뭐길래 이런 과정을 겪는 것일까요?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종입니다. 그 전에는 호모 일렉투스, 호모 아빌레스였는데, 더 과거로 올라가면 침팬치의 조상과 우리 인간의 조상이 같은 조상이었습니다. 침팬치와 갈라진 시점이 600~700만년 전이고, 우리 조상의 화석 중 가장 오래된 화석은 320만년 전입니다. 

 

 우리의 조상은 앞은 초원이고 뒤는 숲인 사바나라는 지역에 살았습니다. 농업혁명이 일어나서 현대 사회 시스템이 생기기 전까지 우리는 숲에 살았던 것입니다. 진화에서 599~699만년은 굉장히 큰 세월인 반면에 1만년은 짧은 시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699만년을 살면서 육체의 모든 DNA 구조가 숲에 맞도록 정렬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현대 사회 환경에 우리 DNA는 아직 적응이 안된 상태인 것이죠. 앞으로 50만년 더 이렇게 살면 여기에 적응이 될테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숲에 가면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DNA가 숲에 맞춰져 있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바이오필리아 Biophilia'입니다.

 

 사바나 이론(Savana Theory) : 현대인의 뇌에는 석기시대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바이오필리아(Biophilia) : '인간의 유전자 속에 자연을 사랑하고 의존하려는 인자가 각인되어 있다'라는 가설로, '인간은 자연과 함께 교류할 때 비로소 참된 인간성의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한 이론

 

  우리는 이러한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실천하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가 숲에 가는 이유를 알고 이 숲을 어떻게 이용하고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균형적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돕고, 올바른 실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섬에는 원주민이 살고 있지 않습니다. 100ton의 무게, 10m의 높이 규모의 모아이 석상을 해안가에 건립할 정도로 똑똑했던 원주민들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신뢰할 만한 학설 중 하나가 생태적 분석입니다. 큰키나무들이 번성했던 400년 경 폴리네시아인들이 이 섬에 정착했고 큰키나무들이 멸종한 1400년부터 원주민 절멸 과정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최초 원주민들은 고구마 경작지 확보를 위해, 돌고래를 사냥할 배를 만들기 위해, 모아이석상을 해변가로 운반하기 위해 만은 나무를 벌목했습니다. 원주민들의 지속적인 벌채로 인해 큰키나무 군락 유지에 요구되는 최소 한계점을 어느새 넘어섰을 것이고 큰키나무는 멸종되었습니다.  큰키나무가 없으니 더 이상 원주민들은 돌고래 사냥을 할 수 없고, 생태계가 무너진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게 되니 결국은 식인풍습이 생겨나게 됐습니다. 과거 이스터섬에 있던 큰키나무는 현재 지구상에서 멸종했으며, 이스터 섬에 있던 조류 25종 가운데 1종은 멸종, 최소 12종은 절멸했습니다. 결국 이스터섬의 원주민들은 절멸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인간들이 자연의 한계점을 파괴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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